이 도시에서 가장 새롭고 제일 오래된 티플링
이 도시에서 가장 새롭고 제일 오래된 티플링
잿불빛연대(Emberlight Union)는 3세기 전 일메이터 신도들이 처음 설립해 운영되고 있는 티플링을 위한 지원 단체였다. 수많은 정치적 사건과 법률 개혁에도 불구하고 티플링을 향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고, 극단적 종족차별주의자가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티플링 모임’이라고 하면 “그거 멋지군” 하는 짧은 말과 함께 금방 잊어버렸다. 그러니 그 명성에 비해 후원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메이터 신전의 곡물 창고를 빌려 간신히 운영되던 연대는 이제 발더스 게이트의 하부도시 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아 조용히 명맥을 이어갈 정도는 되었고, 신앙적 색채는 거의 사라졌지만 누구도 문전박대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살아있었다.
운영비는 늘 간당간당했다. 공간 임대료나 활동비, 다과비는 활동가들이 십시일반으로 감당했다. 다들 살림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돈 문제로 얼굴 붉히는 일은 없었다. 다과래 봤자 대단한 건 없어도 싸구려 찻잎만큼은 넉넉해서, 누구건 찾아오면 주전자 가득 따끈한 차를 내어줄 수 있었다. 운영진은 매달 임대료 걱정에 한숨을 쉬었지만, 이 모임이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뿔 달고 살아가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첫 고백과 울음을 받아줄 자리가 꼭 필요하단 것을.
바람이 차고 해가 짧아졌다. 발더스 게이트의 시민들은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럴 수 없는 낮고 비천한 이들은 누더기 조각을 걸치고 차운티아 신전으로 모였다. 대지와 풍요의 여신을 섬기는 사제들은 기도할 시간을 아껴 국자를 들었고, 그들이 빈민에게 나눠주는 수프는 싱거울지언정 혀를 델 정도로 뜨거워 추운 겨울에 몸을 데우기 제격이었다. 잿불빛연대의 사무실은 바로 그 신전 옆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있었다.
잿불빛연대의 모임은 매주 사나흘을 텀으로 두고 저녁마다 열렸다. 마르페노스의 첫 주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모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해가 넘어가 어두침침했다. 길이 질어지기 전의 가을밤은 종종 바람이 거세었다. 모임에 오는 이들은 저마다 가져온 담요를 겹겹이 두르고, 작은 랜턴에 기름을 덧부었다.
한 낯선 티플링이 처음으로 이들의 모임에 찾아온 것은 그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저녁이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목재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입구 문틀에는 뿔 너비로 찍힌 자국이 거칠게 여럿 나 있었다. 바닥은 발에 닿을 때마다 삐걱거렸고, 난방과 조명을 겸하는 마법석 램프는 천장에 매달린 채 깜박였다. 출입문을 열자 바로 앞에 보이는 책상에는 이런저런 양피지 두루마리와 신문, 쓰다 남은 양초와 낡은 찻잔이 뒤섞인 잡동사니가 놓여있었다. 그 너머로 운영진들이 앉아 색종이를 자르거나 무언가 써 내려가고, 주판을 굴리며 돈 계산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두 번의 정갈한 노크였다. 방문객 응대를 하는 직원이 길게 “네에—” 하고 크게 답했지만, 문이 열리는 대신 잠시 후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두 번의 똑똑. 의아했던 직원은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제서야 문을 열고 그 공간에 발을 들인 건 티플링 남자였다. 어두운 색안경과 인중까지 덮고 있는 스카프 때문에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끝으로 갈수록 붉은 뿔과 흰 곱슬머리뿐이었다. 이방인의 기척이란 건 이상하게 공기를 바꾸는 법이라, 문이 열리는 순간 조용한 이야기들이 반토막 나듯 끊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는 들어서면서 예의 문틀에 뿔을 쾅 찧고 말았다.
“아이구, 조심하시지.” 문가에 서 있던 연보랏빛 피부의 티플링이 말했다. “저 문틀을 확 뜯어버려야 한다니까.”
“잇불모임 참가자분이세요?”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뭉툭하게 잘린 뿔 끝을 금속 장식으로 막은 청년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끄덕였다. “신청서는 작성하셨구요?”
“아, 동포끼리 삭막하게 신청서부터 내놓으라 하기야.” 사무실 뒤편에서 괄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샛초록빛 역안의 중년 티플링이 성큼 다가왔다. “저분 머리 위에 난 게 뿔 아니면 장식이냐? 너는 애가 너무 깐깐해서 탈이야.”
“아, 부장님. 원래 신청서 받고 진행하는 거잖아요.”
평소에도 줄곧 재미 삼아 놀림받는 게 일상인 듯, 청년이 투덜댔지만 부장의 얼굴엔 애정 어린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젊은 애의 뒤통수 머리칼을 흐트러놓으며 장난을 치던 그가 낯선 이를 앞에 세워놓은 걸 기억하고 그에게 말했다.
“그래,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요? 홍보를 해도 오는 사람만 와서 걱정이었는데.”
“뭐… 친척이 알려줘서 찾아와봤습니다.”
“친척 누구? 우리가 아는 사람인가?”
“…아우렐리아라고 혹시 아실런지.”
잠시의 침묵 후 아! 하는 표정과 함께 부장이 손뼉을 짝 쳤다.
“알다마다요. 내가 이 단체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만났었지. 그 양반, 말수는 적으면서 글 못 읽는 애들에게 꼬박꼬박 발음도 짚어주고, 장사 시작한다는 애 있으면 목돈도 쥐여주고 그랬죠. 참 나이가 많은데 늙지도 않는 양반이었어. 못 만난 지도 거의 15년은 되었구먼.”
이야기를 듣던 남자는 묘하게 꽁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점수를 딴 모양이었다. 부장은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훤히 웃었다.
“아우렐리아의 친척이라면 대환영이지. 곧 있으면 모임 시작이니까 우선 참여하시고 신청서는 이따 작성하셔.”
부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들어서자, 거실쯤 되는 공간에 이리저리 짝이 맞지 않는 의자가 원을 그리며 놓여있었고, 중앙의 작은 커피 테이블에는 커다란 찻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고, 누군가 만들어온 듯한 과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드셔봐, 총각! 내가 집에서 구워 온 특제 쿠키라네.”
색이 바랜 금발 머리에 두 번 휘어진 검은 뿔이 달린 노파가 나이 먹어 떨리는 손으로 과자를 권했다.
“나는 내 어머니께, 어머니는 할아버님께, 할아버님은 당신의 증조할머님께 배웠지. 비법은 설탕을 듬뿍 넣고 시나몬을 살짝 치는 거예요. 정확한 레시피는 우리 가문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이라우.”
하지만 청년은 슬그머니 집어 냄새를 맡을 뿐 입에 대지는 않았다. 그가 노파의 실망한 눈초리를 피하며 어색하게 서 있는 와중에 모임 일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이미 구면인지 사람들은 들어오면서부터 가벼운 인사와 담소, 웃음소리를 주고받았다. 난롯불을 지펴도 삭막했던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차며 점점 따스한 온기로 채워졌다. 남자는 흘긋흘긋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 의자 하나를 골라 앉았다. 누군가 “다 모였으면 시작할까요?” 라 말하자 다들 수다를 멈추고 입안에 있는 과자를 씹어 삼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세브라 에이론입니다.”
마흔 어드메쯤 되었을 여자는 매끈하게 뒤로 흐르는 흰 뿔과 희미한 청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어두운 회색 튜닉을 입은 세브라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구성원들 전부를 둘러보았다.
“오늘도 불씨를 잇는 사람들, 잇불모임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누군가는 이번 주를 더 아프게 보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이 지나왔을지 모르죠. 그 모든 하루가 여기에 함께 앉을 자격이 됩니다. 오늘도 서로 안부를 주고받아 볼까요. 누구부터 할래요?”
나이 지긋한 노인이 손을 들었다.
“안녕하시오, 내 이름은 드레비오스요.”
“안녕하세요, 드레비오스.” 자리에 앉은 모두가 입을 모아 답했다.
“오늘 아침 발더의 소리를 읽는데, 하부도시의 티플링 밀집 지역에만 재산세를 인상한다고 하더군. 아마 당신네들도 다 봤겠지.”
다들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거나 나직한 신음으로 그에 답했다.
“명분이랍시고 내세운 건 지난 여름 폭우로 인해 빠듯해진 도시 재정을 확보하겠단 거지만, 대단하신 상부 도시 양반네들의 세금은 어떻게 걷고 있는지 아무 말도 없더군. 재정부의 베렌탈 공작은 티플링 주민들의 세금 납부율이 의심된다니 어쩌니 주둥이를 놀린 적이 있잖나.”
“그 자식은 제 할머니가 이 동네 출신인데 그 지랄이야.”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참 착잡하더군. 사람들은 티플링이 도둑질을 하거나, 내야 할 돈을 안 낸다고만 생각하니. 나는 한때 세금 걷던 사람이었어. 하지만 세무관에서 일하는 동안 외톨이였던 것은 물론이고, 불복 통지를 내려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죄 나에게 몰아서 줬지. 그렇게 방문한 사람들에게 내가 낸 세금보다 훨씬 많은 비난을 받았다네. 서민들 돈 훔쳐먹는 정부의 애완 악마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세금을 걷으러 가면 악마놈이고, 내겠다고 해도 덜 냈다느니 세탁이라느니 하며 귀찮게 굴고. 나 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하지만 젊은 시절의 드레비오스였다면 아주 섹시한 악마였겠는데요.”
“이놈이 어른 말씀하시는데.”
“옛 생각도 같이 나서 우울하셨겠군요.” 어두운 이야기에도 세브라의 미소는 희미해졌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비각인(非角人)들은 우리가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느냐보다는, 어떤 얼굴을 하고 태어났는지에 따라 낙인을 찍어요. 우리는 뿔을 달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증명, 더 많은 인내를 요구받죠. 이 불합리한 구조는 드레비오스 씨의 젊은 시절만큼이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오늘 아침 신문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믿을 수 없는 불량 납세자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요. 저마다 겪은 방식은 다르겠지만, 그 피로와 억울함이 어떤 건지는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을 거예요. 누구 나서서 이야기해 볼까요?”
청어 뼈 무늬 옷을 입은 어둑한 잿빛 피부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둥글게 휘어진 뿔도, 복슬한 곱슬머리도 꼭 양을 연상시켰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바샤예요.”
“안녕하세요, 바샤.”
“이미 아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희 큰애가 이번에 공립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누군가 ‘벌써 그렇게 컸구나.’ 하며 놀랐다. 바샤는 아이 생각만 해도 미소가 비어져 나오는지 환한 눈빛을 했다. “저는 인간과 결혼했고, 우리 애들이 다 친탁이라— 저희 시댁 식구들 전부 똑같이 생겼거든요— 큰애는 뿔도 꼬리도 없어요. 사실 다행인 일이죠. 엄마가 크면서 겪어온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무례라고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대부분 쓸쓸한 낯빛을 할 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입학 신청을 해야 해서 아이 손을 잡고 시청에 직접 갔는데… 담당자가 제 뿔을 보더니 서류를 두 번 확인하더라고요. 거기까진 뭐, 익숙하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저희 애랑 돌아다니면 납치범인 줄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바샤가 잠시 울컥했는지 말을 삼켰고, 비법 쿠키를 권하던 노파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아녜요, 괜찮아요, 멜라러트. 그냥 화가 나서 그래요. 우리 아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건 난데, 이런 오해를 받는 게 너무 모욕적이라서요. 하여튼… 빠진 서류는 없다고 확인을 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우리 집에만 등록 서류가 안 왔어요. 대신 누가 왔는지 알아요? 가정 방문 조사원이요. 결국 저희 시아버님이 화가 나서 따지러 가셨죠. 행정상의 실수라고 하는데, 실수가 우리 애 하나한테만 난 건 이상하잖아요?”
“옛날에는 티플링이면 학교에서 안 받아줬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나 학교 보내겠다고 서류를 여섯 번이나 냈다더구나, 여섯 번이나. 바샤는 그나마 한 번에 확인은 받았잖니.” 멜라러트가 덧붙였지만, 젊은 티플링들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세브라는 다들 마음을 식히기까지 기다렸다가 모두에게 말을 건넸다.
“바샤, 이야기 나눠줘서 고마워요. 단지 서류가 누락되었을 뿐일 수 있어요. 하지만 바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나는 이 아이의 엄마’라고 입증해야 했을까요. 이건 단지 행정상의 불쾌한 경험이 아니라, 티플링이라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신뢰받지 못한 경험들이 쌓여서 생긴 상흔이에요.”
세브라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그런 일을 겪었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바샤가 느꼈던 감정은 바샤 혼자만의 것이 아니에요. 여기서 바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 볼래요?”
여드름 흉터가 선명하고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소년이 슬쩍 손을 들고 말했다.
“어… 안녕하세요. 저는 에자트예요.”
“안녕하세요, 에자트.”
“음, 저는 저희 엄마가 인간이신데요.” 그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릴 때 엄마랑 저랑 돌아다니면 저는 고아 취급 받고 엄마는 사회복지사 취급을 받았대요. 그게 싫으셔서 언젠가부터는 엄마가 나를 안고 뽀뽀하면서 다니고 그랬죠.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창피했는데, 커보니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셨는지 알겠어요.”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에자트. 말씀해 주신 일은 티플링과 비각인이 한 가족일 때 흔히 겪는 일이에요. 바샤와 당신 어머니가 부모임을 증명해야 했듯이, ‘정상’의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심부터 받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죠.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 때, 그 진심을 증명해야 해요. 공적 제도는 그런 차별을 바로잡기는커녕 되려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고요.”
“…저는 나중에 꼭 아이를 갖고 싶은데, 그 애도 커서 나처럼 차별을 받을 거라 생각하면 낳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에자트가 덧붙인 마지막 말은 기어들어 가듯 작았다.
“난 이게 제일 속상해.” 황소 뿔의 중년 남성이 가만히 앉아 있다 말했다.
“아이 갖는 것도 겁나게 되는 것 말야. 나를 닮은 생명을 낳는 일이, 그 생명에겐 저주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다들 앉아 있었다. 의연한 체하던 바샤는 끝내 눈물을 찍어내다 멜라러트가 다시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침울한 분위기 속, 단 한 사람만이 두리번대다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처음 봤던, 연보랏빛 피부에 뿔에는 장식을 주렁주렁 매단 남자였다.
“왜요? 나는 그래서 더 낳고 싶은데. 날 닮은 생명이라면 글쎄… 아주 멋들어진 악마 새끼가 태어날 거잖아. 그 애가 나보다 더 악랄하게 자라줄 거라고 생각하면 좀 짜릿하거든.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바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질책하듯 말했다. “말락!”
“다들 왜 이래요. 뿔 없는 놈들 시선이 두려워서 착하게만 살려는 거 지겹지 않아? 세상 비위를 맞추며 착하게 살기보단 그냥 세상이 싫어하는 얼굴대로 살아버리는 게 편하다고.”
누군가는 헛기침으로 불편함을 감췄고, 또 누군가는 바샤의 눈치를 살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나 말락은 아랑곳 않고 히죽 웃더니 기지개를 쭉 켰다. 머리가 흔들리며 뿔에 매달린 장식이 절그렁거렸다.
“그래, 애 낳는 얘기는 농담이긴 하지만, 생각해 봐요. 이 도시가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겠어?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죽으란 거잖아. 난 그렇게 살기 싫어. 내 맘대로 살 거라고. 세상이 날 더럽게 생각하면, 나도 이 세상 좀 더럽혀 보자고. 조용히 살지 말고 내 족적을 남겨보잔 거지.”
“너 그런 말 하고 다니면 느이 어머니가 우신다!”
“아, 우리 엄마한테서 관심 좀 꺼요, 드레비오스! 새장가 들고 싶어서 그러지!”
“무슨 헛소리냐, 이 녀석아! 너네 엄마 장사하시면서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허구한 날 날티나게 뿔에 주렁주렁 달고 이상한 애들이랑 어울리기나 해! 너 그러다가 죄받는다, 인마.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떳떳이 살아야지!”
드레비오스와 말락이 신경전을 벌이자 세브라가 분위기를 정리했다.
“두 분 진정하세요. 드레비오스 씨는 말락이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거고, 말락은 세상이 무너져도 자기답게 살아남고 싶다는 거겠죠. 우리는 모두 살아온 방식도, 싸워온 방식도 달랐어요. 그 차이를 품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어요, 그렇죠? 그것만큼은 서로 잊지 말아줬으면 해요. 한숨 좀 돌리고 이어가볼까요?”
그 말에 드레비오스는 민망하게 헛기침을 했고, 말락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짜증을 삭였다. 두 사람의 팽팽한 신경전이 조금은 우스웠던 탓인지, 키득임을 손으로 가린 사람도 몇 있었다. 다음으로 입을 연 이는 살굿빛 피부에 구불거리는 금발을 가진 미인이었다.
“…난 말락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해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우리가 너무 얌전하게 증명만 하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뭘까.” 그녀가 손가락으로 따옴표를 만들며 말했다. “‘착한 티플링’ 보여주면 뭐 해요. 결국엔 믿지도 않아. 그래서 난 가끔 소리도 지르고, 물건도 부수고, 돈도 훔치면서 살고 싶어요. 걔들이 기대하는 ‘악마 핏줄’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어요.”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어두운 낯빛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세브라는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고 가만히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에게 얘기해줄 수 있나요, 프리알라?”
“어, 이건 창피한 이야기인데…” 프리알라가 조금 웃었다.
“…내가 예전에 만났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그 애도 하프엘프라 세상 서러운 일을 겪곤 했죠. 그래서 나를 이해한다고 착각하더군요. 하지만 하프엘프와 티플링이 겪는 차별은 다르잖아요? 엘프를 닮은 외모 덕에 그 애는 어디 가서든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지만, 사람들은 내 외모든 성격이든 ‘티플링답지 않은’ 부분으로만 칭찬하려 했어요. 결국 ‘당신은 예외니까 괜찮다’는 말이잖아요. 피부색이 인간 같으니까, 조용하니까, 착하니까. 저는 항상 뭔가를 감안하고서야 받아들여져요.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하는 기분은… 정말 불쾌하고 초라하더라고요.”
“그 마음도 이해해요. 정말로요. 나답지 않은 나를 보여줘야만 하고, 타고난 부분을 감춰야만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사랑은 사람을 닳게 만들죠. 분노도, 질투도 당연한 감정이에요.”
“…처음엔 그걸 그냥 삭히고 살았어요. 내가 미안하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어요? 질투하는 내가 못나게만 느껴지는데.” 프리알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무릎 위에서 깍지 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그 미안함이 화로 바뀌는 거예요. 왜 나만 늘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왜 나만 덜 무섭게, 덜 시끄럽게 살아야 하나 모르겠더라고요. 여자친구는 화가 날 때면 그때그때 표출하면서 분을 삭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나는 그럴 수 없는 게 화가 났어요. 언젠가부터 그걸 정말 참을 수 없게 되어서 내 감정을 표현하면서 살기 시작했죠.”
“여자친구분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 예상한 것과 달리 잘 받아들여 줬어요. 오히려 내가 참고 사는 게 속상했다면서 위로해 주고요. 나중에 그 애가 바람피워서 헤어졌고, 지금도 돌이켜보면 화는 나지만… 그때 나를 나로서 받아들여 준 건 아직도 고마워요.”
프리알라의 말에 제각기 비각인들과 사귀었던 경험을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불법에 준하는 심각한 홀대를 받았고, 누군가는 역겨울 정도로 지나치게 따스한 환대를 받았다. 한없이 선량한 인간 남편과 다정한 시댁을 둔 바샤는 뿌듯하게 웃었다. 이토록 오래 웃음이 끊기지 않는 분위기는 잇불모임으로서도 드물었다. 무겁고 날 선 기억들조차도 잠시, 누그러진 일상적 감정 속에 녹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흐르던 시선들이 조금씩 같은 방향을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장 낯선 얼굴을 한 채, 가장 오래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가장 많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는 그 남자. 그 모든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얼굴을 가린 스카프를 추켜세웠다.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분이죠?” 세브라가 부드럽게 첫인사를 건넸다.
“여기서는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돼요. 여기서 역안이나 송곳니를 보고 깜짝 놀랄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 말에 젊은 애들이 저들끼리 키득거렸다. “얼굴 보여주시고,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망설이던 남자가 색안경을 벗고 스카프를 풀어 내렸다. 과연 그의 두 눈은 역안이었다. 눈동자는 진한 핏빛이며 피부는 대리석처럼 창백하고 매끄러웠다. 새하얗게 곱실거리는 은발 아래 뚜렷한 콧대와 날 선 턱선이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끄는 외모를 완성했다. 보기 드물게 잘생긴 남자였다. 어딘지 섬뜩할 정도로.
“어… 안녕하세요. 저는, 음.”
남자는 창백한 얼굴을 찌푸리며 이상한 포인트에서 말을 멈췄다 이내 말했다. “음, 제길. 저는 스크래치예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이름인데도 다들 고개를 주억거려주었다. “안녕하세요, 스크래치.”
“오늘 여기까지 오시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그 용기가 여기 있는 우리에게도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 스크래치에게 잘 왔다고 말해볼까요?”
“잘 왔어요, 스크래치.” 모두가 입을 모았다.
“오늘 나누고 싶었던 대화가 있다면 편하게 시작해 주셔도 돼요.”
세브라의 따스한 말씨에도 스크래치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쩐지 불안하고 언짢은 기색으로, 그는 한쪽 다리를 달달 떨고 긴 꼬리를 휘휘 저었다. 시선은 탁자 위의 애꿎은 과자 더미에 꽂힌 채였다. 사람들이 슬슬 의아해할 때쯤에야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이 말을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어… 원래는 티플링이 아니었습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에 방 안 공기의 밀도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누군가는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참지 못했고, 누군가는 들고 있던 과자를 무릎 위로 툭 떨어뜨렸다. 드레비오스는 눈썹을 추켜세웠고, 바샤는 눈을 동그랗게 떴으며, 프리알라는 입을 떡 벌렸다. 소심한 에자트는 옆 사람 눈치부터 살폈는데, 말락은 묵묵히 팔짱을 낀 채 이 이방인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니었다고요?” 바샤가 의심쩍다는 듯 물었다. “그러니까… 몸이 변했다는 건가요?”
“몸이 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긴 한데… 그렇습니다.”
“잠깐만, 스크래치. 저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도와주시겠어요?” 세브라가 놀랍도록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당신은 본래 비각인으로 태어났지만, 이제는 신체적으로 티플링의 형질을 갖게 되었다는 말씀인가요?”
“나도 거짓말 같은 거 알아요, 제길.” 스크래치가 짜증스럽게 뒤통수의 곱슬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렸다. “이상하죠, 나도 알아요. 나도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믿기 어려울 지경이니까. 그런데… 그냥 일어나버렸다고.”
프리알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스크래치를 한참 보다가 물었다. “원래는 뭐였는데요? 인간?”
“아니, 원래는 엘프였지, 그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말에 방 안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묵묵하던 드레비오스도 성성한 눈썹을 추켜세웠고, 바샤는 저도 모르게 오오, 소리를 냈다가 창피한지 입을 가렸다. 말락은 헛웃음을 내뱉었고, 프리알라는 입속으로 ‘엘프였대….’ 하고 중얼거렸다.
“혹시 몇 살이에요?” 에자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5…”
“오십?”
“500…”
“어머. 이 사람 우리 집보다도 더 오래됐잖아.” 프리알라가 기겁했다.
“동네에서 허름하기로는 유명한 집이 우리 집인데. 이 사람은 거의 고고학 유물 수준이네.”
“흥, 멋지십니다 그래. 우린 태어날 때부터 이 꼬리랑 뿔을 달고 나와서, 화장실 가리기 전부터 악마 소리 들었는데. 당신은 수백 년을 엘프로 살다가, 그 곱상한 얼굴로 티플링이라는 옷을 입게 되었네요. 이거 고소한데.” 말락이 이기죽거렸다.
“아, 근데 참 곱다.” 멜라러트가 반달 안경 너머로 눈을 찌푸리며 스크래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 젊을 적에 유명했던 바드 닮았네. 그이가 연애편지 안 받아준다고 나한테 와서 울던 처녀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총각도 참 이쁘네, 곱고.”
웅성웅성.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낙들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외모 품평이 이루어졌다. 드레비오스는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고, 자신이 의도한 방향대로 대화가 흐르지 않자 못마땅해진 말락의 낯빛이 울그락푸르락했다.
“반년 전쯤부터 송곳니가 뾰족해지고 이마가 근지럽기 시작하더니 뿔이 돋았지. 꼬리가 돋아나는 동안에는 없던 뼈가 자라나려니까 어찌나 척추뼈가 쑤시던지 내내 앓아누워야 했고, 젠장… 의사도, 클레릭도 찾아가보았지만 헛수고였어.”
“어쩌다 몸이 바뀌셨는지는 짐작이 가요?” 프리알라가 물었지만 스크래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저주에 의해서인지 무엇인지….”
그가 선택한 단어에 말락의 피어싱 달린 눈썹이 꿈틀했다. 사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미 그에게는 거슬리는듯 했다. 사실 티플링 모임에 와서 티플링이 된 걸 불평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지만 잇불모임, 정확히는 세브라의 원칙에 따라 다들 새로운 회원에의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다. 늙은 멜라러트는 이미 이 총각을 손주 삼을 기세였다.
“도대체 어느 신에게 미움을 사서 이렇게 되었누, 딱하기도 해라.”
“짐작가는 바가 너무 많아서 모르겠는 걸.” 스크래치의 입술이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사연이 듬뿍 묻어나는 쓸쓸한 웃음이었다.
“아무튼, 티플링이 되고 나서부터 사는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말이지. 나는… 변호사인데, 일단 몸이 변한 다음부터 원래 고객들을 만나지도 못할 뿐더러… 그 후 사무실에 찾아오는 새 고객들은 꺼림칙해하며 나가기 일쑤야. 상부 도시의 돈 좀 있는 고객들은 전부 다른 변호사를 찾아 나섰지. 밤길을 걷다 불주먹 용병대 놈들에게 불심검문을 당하기도 하고…”
“그거 안 당해봤어요?”
“음, 한가로운 밤산책은 엘프들만의 특권이었나보군.” 스크래치의 말에 여기저기서 피식 실소했다. “2주 전인가, 불주먹 용병대 놈이 날 불러세우더니 늦은 새벽에 나다니는 용건이 뭐냐는 거예요. 볼 일이 있어서 주점에 좀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는데 자꾸 신분증을 내놓으라는 거야. 짜증을 좀 냈더니 나를 확 밀치더군. 넘어져서 손바닥이 까졌고… 그때 처음으로 들었지, 악마 핏줄(foulblood)라는 말.”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오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악마 핏줄’이란 지긋지긋한 말은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들어본 멸칭이자, 그들 모두에게 익숙한 상처였던 것이다.
“참, 뿔 없는 놈들은 하는 말이 늘 똑같구먼.” 드레비오스가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조금 다친 것만으로 끝난 게 다행이지. 자칫 잘못했다간 유치장 신세를 졌을 거요. 갖다 붙이려면 죄명도 많지. 풍기 문란, 공공기물 훼손, 공권무집행 방해…”
“공공기물 훼손, 그래. 시설에 손상이 갈까 우려된다며 출입을 막는 가게가 종종 있더군. 그건 무슨 소리야?”
“뿔로 찍거나 꼬리로 쳐서 넘어뜨릴 위험이 있다는 거죠. 우리가 이거 달고 하루이틀 살았나, 우리 몸도 간수 못할까 봐. 진짜 멍청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야.”
“게다가 전에는 곧잘 인사를 건네던 정육점 주인은 이제 묘하게 내가 가게에 있는 내내 쳐다만 보는데…”
“그건 물건 훔칠까 봐 감시하는 거예요. 아, 어쩜 좋아. 평생 안 받아본 대우일 텐데 앞으로 속을 좀 많이 썩이시겠어요.” 프리알라가 말했다. 목소리에 미묘하게 희열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앉아, 몸이 변하면서 스크래치가 새로 직면한 크고 작은 차별과 멸시, 그리고 그가 늘 알고 있었지만 전에 체감한 일 없던 노골적인 경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익숙했던 일상이 어떻게 낯선 질문이 되는지를, 이제 막 알게 된 이방인과 함께. 스크래치 말의 진위를 의심하는 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낯선 이를 환대하는 모임의 규칙에 따라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화를 나눠볼수록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실렸다. 애초에 그가 겪었다 말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티플링이라면 공기처럼 일상적으로 지나칠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만 스크래치가 부러워요? 다른 종족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해 봐요. 이분은 지금, 이 도시에서 가장 새롭고 제일 오래된 티플링인 거예요. 그거 좀 멋있는 타이틀 아니에요?”
에자트가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멋진 표현이라며 어린 에자트를 칭찬하는 가운데…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되었어요? 이걸 받아줘?”
말락의 말이 허공을 날카롭게 갈랐다. 모두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스크래치를 쏘아보며, 악의가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가짜 티플링이야.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가상하지만, 뿔 한 쌍 달렸다고 우리랑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이 몸으로 태어나서 쭉 살았던 사람이야. 그게 어떤 건지 오백 년을 얼굴 하나 구겨본 적 없는 요정족 나리께서 어떻게 알겠어. 분명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해대고 고상하게 세상만사 다 내려다보는 양반이었겠지. 당신은 아직도 이 모습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 안 하잖아요? 기회만 생기면 싹 벗고 엘프로 돌아갈 거잖아요, 안 그래? 그런 사람은 우리 곁에 있을 자격 없어.”
“자기.” 매끄러운 호칭이었지만,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 인생에 대해서 한 톨도 모르면서 단정하지 말지? 나는 뿔이 없었을 적에도 나만의 방식으로 망가지고, 부서지고, 남은 걸 하나하나 주워다 꿰매며 살아왔어.”
“그래 봤자 엘프 나리였을 거 아니야!” 말락이 버럭 소리쳤다.
순간, 스크래치가 위협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좌우, 상하로 두 쌍씩 난 날카로운 송곳니가 난롯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였다. 태어날 때부터 티플링이었던 이들조차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려는 야성— 그 본능은 이미 지옥을 닮아 있었다.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얼마나 더 깊이 지옥을 견디고 살아남았는지는 반백 년도 채 살아보지 못한 네가 감히 가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살벌한 침묵, 살얼음 같은 적개심. 누구도 감히 입을 열려 하지 않는 그때, 세브라가 전문적인 솜씨로 중재에 나섰다.
“말락, 누구든 그 사람의 지옥은 겉만 봐선 모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아 왔고, 그건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라고 다 같은가요? 우리 모두 티플링이지만, 그 안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걸 기억해 줬으면 해요.”
“말락, 이 녀석아.” 드레비오스가 전에 없이 자상한 말씨로 타일렀다. “너 이렇게 악에 받친 아이 아니었잖냐. 예전의 넌 누가 네 뿔을 흘겨보면 속상해하고, 씩씩하게 가게 일손 돕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 귀한 마음이 어떻게 다쳤는지 우리 모두 모르는바 아니다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 마음까지 다치게 하면 안 되지. 우린 다 상처를 가지고 여기에 왔고, 누구의 상처가 더 큰지 겨루기 위해 모인 게 아니야… 알겠냐.”
“그래요. 뿔 모양이 어떻건, 그걸 달고 태어났건 나중에 자랐건… 세상은 우릴 똑같이 악마라고 부를 거예요. 저분은 이제부터 좋든 싫든 붐비는 곳을 다닐 때 꼬리 잡아채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어쩌다 불심검문 걸리면 선량한 시민 연기를 해야 해요. 관공서 서류는 두 번, 세 번 제출해야 할 거고, 자기 직업에서도 평균 이상의 실력자라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할 거라고요. 그 정도면 우리가 되기에 충분한 것 같은데, 동포에게까지 악마처럼 굴면 안 되지, 말락….” 바샤도 말했다.
“말락이 속상한 마음은 이해해요.” 세브라가 가만히 달랬다. “말락은 비각인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었고, 그 상처가 얼마나 아팠는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이해해요. 하지만 당신의 아픔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우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거예요. 여기서는 누구도 자신의 아픔을 증명하지 않아도 돼요. 다만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을 책임은 있어요. 그게 우리가 이 자리를 지켜온 방식이에요.”
말락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입술을 앙다물고 화를 삭였다.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제각기 불편함과 안쓰러움이 섞인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연 것은 프리알라였다.
“저기, 이럴 때 이런 말 꺼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방금 하신 말씀이 정말 좋았어요. 세상이 우릴 아무리 상처입혀도 우리는 서로를 지키려 애쓰고, 우릴 밀어낸 손을 향해서도 상냥하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우리더러 악마를 닮았으니 포악할 거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당한 것 치고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 이야기가 생각나요. 그 왜…”
말을 멈춘 프리알라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역사책에도 나오잖아요. 네더브레인 사태가 일어났을 때 도시를 구한 영웅 이야기… 그 사람도 티플링이었다잖아요.”
바샤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맞아.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워낙 유명한 이야기잖아요… 가진 것 하나 없는 티플링 부랑아가 도시를 구했다고. 엘터렐 사건으로 추방당한 티플링 난민들도 그이가 도와서 발더스 게이트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하고. 전설 그 자체였어요.”
“그럼, 그럼. 우리 고조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엘터렐 출신이셨지.” 멜라러트가 끄덕였다. “아마 허풍이겠지만 그 영웅을 직접 만나 뵙고 이 도시로 이주해 왔다는 이야길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우.”
“티플링은 세상 하나쯤은 구해야 사람 취급받는다더니, 딱 그 얘기지.” 말락이 코웃음을 쳤다. “도시 하나 구해도 이름 하나 제대로 못 남기잖아. 아직도 그 사람 이름 모르겠다고들 하잖아. 전설이라면서.”
“그래도 우리한텐 영웅이야. 지옥 심장 카를라크도 그렇고…” 드레비오스가 중얼대듯 덧붙였다. “뭐, 사실 우리네 티플링들이 영웅이 될 기회가 많지는 않잖나. 어쩌다 영웅이 되고 나서도 ‘티플링 치고 잘했네’ 소리나 듣는 판국이고.”
“티플링에 부랑아라면 어떤 삶을 살았겠어요? 그렇게 아프고 소외된 사람이었는데도, 끝내 세상을 구했다는 게 감명 깊어요.” 프리알라가 이어서 말했다. “세상이 악랄하게 굴었을 텐데, 그래도 그 사람은 세상 편을 들어줬잖아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티플링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게 되어요.”
“저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읽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어린 에자트가 맑게 웃었다. “우리 반에서 티플링은 저 혼자였는데요, 그 사람 이야기가 교과서에 나왔던 날은 괜히 가슴을 펴고 다녔어요. 내가 한 일도 아닌데… 그날 애들이 저 보고 ‘전설의 후예냐’고 장난치던 것도 기억나요.”
우스운 이야기에 모두 한차례 웃었다. 단 한 명, 스크래치만 웃지 않았다. 오래된 무언가를 꾹 누르고 있는 얼굴이었다. 남들 보기에 속내를 읽을 수 없는 그의 두 눈이 그 자리엔 없는 과거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그가 돌연, 불현듯이 말했다. 그 말이 꼭 헛디뎌 넘어진 사람의 무릎처럼, 실수로 다쳐 흐르는 피처럼 우발적이었다.
“…먼 옛날 나의 연인도 티플링이었어요. 벌써 300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목숨을 빚졌어. 그러니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영영 입을 닫을 것만 같았던 스크래치가 말하자 온 방의 시선이 쏠렸다.
“그녀는 참, 똑똑했어요. 교활하기까지 했죠. 말로 천 냥 빚을 다 갚을 사람이었어. 울 때는 온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었고 웃을 땐 송곳니 여덟 개를 다 드러내며 웃었지. 눈동자는 언제나 금빛으로 반짝이고, 나를 보면 기뻐서 꼬리를 바르르 떠는, 정말…”
스크래치가 돌연 말을 멈췄다. 말하는 잠시 동안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살고 있는 것만 같던 그가 순간 낯선 사람들 앞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어이구, 300년 전인데 그렇게 자세하게 기억해요?”
“우와.” 에자트가 멍하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리 아빠— 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아빠 이야기할 때 엄마가 짓는 표정이랑 똑같아요. 방금 스크래치 씨가 한 것처럼 말을 멈출 때도 있고요. 정말 사랑하셨나보다….”
“어이고, 에자트 녀석 건방지게. 너 뿔에 광택제 바르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랑을 그리 잘 알아?”
“아, 진짜. 따박따박 시끄러워 죽겠네.”
에자트의 아련한 말에 말락이 코웃음을 치자, 그간 조용하던 프리알라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말락은 순간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고, 그 모습에 바샤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차츰 가라앉고 나서야, 세브라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나눠줘서 고마워요, 스크래치. 당신의 몸이 변한 건 최근일지 몰라도,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와 인연이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사랑했던 분을 기억하는 방식이 그래요. 스크래치 씨가 그토록 오래된 사랑을 어제 일처럼 꺼낼 수 있다는 건, 그 티플링 연인이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내 당신의 마음에 살아있기 때문일 거예요. 지금의 당신 몸에 생긴 뿔과 꼬리는 어쩌면 그 연인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위안이 조금 되실까요?”
스크래치가 세브라를 돌아보았다.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황망한 눈빛이었다. 살짝 벌어진 입이 이내 다물리고,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내려가 시간 너머 어드메를 헤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세월 닳아 없어진 무언가를 떠올리듯이. 그 눈빛이, 불쑥 열린 오래된 문틈 너머를 들여다보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래. 그녀가 이유일지도 모르지.” 그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스크래치는 그 이상 자신의 생각을 나누지 않았고,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밤이 깊어 모임이 그것으로 끝난 탓이다. 세브라가 간단히 마무리 짓는 말을 하고 나자 하나둘씩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다음 모임 날짜를 물었다. 모임의 시간은 끝나버렸지만, 그날 있었던 대화는 아직 방 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모임을 갈무리할 책임이 있었던지라, 세브라가 의례대로 마지막 구호를 말했다.
“잿가루로 떨어져도—”
“불씨로서 일어나리.”
여럿이 한목소리로 이어받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무거운 일상을 향해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모두의 기대와 궁금증을 배반하고, 스크래치가 잇불모임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에 대해 말락은 ‘그것 보라’면서, 분명 악질적인 장난을 치고 싶었던 허풍선이였을 뿐이라고 화를 냈고, 드레비오스는 묘하게 서운해했으며, 그림을 잘 그리는 에자트는 이상할 정도로 잘생겼던 그 남자의 이목구비를 스케치북에 그려보기도 했다. 바샤는 아이를 재우고 간만에 모임에 들르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말이 진짜건 거짓이건 참 외로운 사람 같던데. 어디 가서 밥이나 굶지 않는지….” 그러면 멜라러트는 어김없이 똑같은 쿠키를 구워 가져오며 몇 번이고 주워섬겼다. “그 총각,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랑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거야. 500년 만에 티플링으로 겪어나가는 세상이 녹록치 않을 테지. 언젠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날이 오면 우릴 찾아올 거야, 암.”
그런 일 없이 오랜 세월이 지났다.
프리알라는 그 후에도 버릇처럼 하프엘프 여자들을 만나다가, 어느 날 같은 여관에서 공연하던 빨간 머리 드워프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프리알라는 유명한 바드가 되어 도시에서 이름을 날렸다.
말락은 늦게 철이 들었다. 홀어머니가 병에 걸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제 삶을 책임지게 되었다. 드레비오스가 나이 들어 명을 다하기 전에 말락의 앞으로 남긴 거금으로, 어머니의 가게를 키우고 장사하는 일에 전념했다. 어느덧 어머니가 시작한 작은 노점이 제법 큰 식료품 가게가 되었다. 그제서야 말락은 자신을 끝내 받아주지 않은 위저드 아카데미, 위대한 마법사가 되겠다는 옛 꿈을 향한 미련을 보내줄 수 있었다.
멜라러트는 어느 날 계단에서 넘어진 후 모임에 다시는 오지 못했다. 멜라러트의 특제 쿠키가 놓였던 자리를 가게에서 파는 싸구려 다과가 대신했다. 초콜릿, 바닐라, 시나몬이 뒤엉켜 감칠맛을 내는 그 쿠키는 그 레시피를 물려받은 손녀딸이 잿불빛연대의 활동가가 되면서야 잇불모임에 다시 등장했고, 큰 사랑을 받았다.
바샤의 자녀들은 무사히 성장했다. 큰아들은 법조인, 둘째 아들은 유명한 요리사, 막내딸은 우체국 직원이 되었다.
에자트도 아이를 낳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재봉사로 일하다가 손님으로 만난 여자와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큰딸은 에자트의 뭉툭한 뿔을 쏙 빼닮은 티플링으로, 둘째 딸은 엄마의 녹색 눈동자를 빼닮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부부는 두 딸을 아낌없이, 차별 없이 듬뿍 사랑해 주었다.
어느 밤, 처제가 놀러 와서 딸들을 재운 사이 에자트는 아내와 함께 밤산책을 나갔다. 마침 떨어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저잣거리에 들렀다. 쇼핑을 핑계 삼은 데이트였다. 야시장에서 파는 꼬치 요리를 아내는 무척이나 좋아했고, 에자트는 아내가 그걸 맛있게 먹을 때의 표정을 누구보다 좋아했으므로. 노점마다 불빛은 흐드러지게 번지고, 고소한 튀김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코를 톡 쏘는 골목. 아내와 손을 맞잡고 걷는 것만으로 충만한 밤이었다. 둘은 익숙하게 비누와 생필품을 산 후에 포장마차에서 꼬치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맛 좋기로 유명한 집이라 줄이 꽤 길었다. 처음에는 귀담아듣지 않았던, 젊은 여자가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만큼.
“…그래서 자기 만나기 전에 라이스윈에 갔는데…”
“갔는데?”
“…거긴 일종의 티플링 공동체가 되어있더라. 그런 데는 처음 봤어. 거기 촌장이 무슨 일로 오셨냐기에 그냥 여행 중이라고, 하룻 밤 자고 가겠다고 했지. 그런데 할신은 동상으로만 남아있지 뭐야. 한 15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땐 늙어빠지긴 했어도 정정했어. 자식 여럿 사이에 둘러싸여서 즐거워 보이더라… 아, 곧 우리 차례네. 무슨 맛 먹을 거야?”
“응, 매운 맛… 아니, 소금 맛.”
“우리 자기, 매운 거 좋아하는데 이제 못 먹어서 어떡해.”
웃음 섞인 목소리가 이상하게 기억 저편을 긁는 듯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인파 너머로 한 쌍의 뿔이 보였다. 익숙한 곱슬머리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희게 빛나고,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눈앞의 여성을 사랑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 점도 세월의 자국이 닿지 않은 듯, 조각처럼 또렷한 얼굴!
에자트는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어어, 하는 소리를 냈다. 주변에서 흘긋 그를 돌아보았고, 스크래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에자트를 마주 보았다. 기억을 더듬는 듯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부드럽게 풀어냈다. 마치 20년의 세월을 거쳐, 이제는 나이 먹어 수염도 덥수룩하고 눈가에 제법 주름도 생긴 에자트를 알아라도 본 것처럼 말이다.
“여보 아는 사람이야?” 아내가 갸웃하며 조용히 물었다.
스크래치의 연인도 고개를 쏙 돌리고 에자트를 돌아보았다. 긴 속눈썹 사이로 커다란 금빛 눈동자가 형형한 엘프 여자였다. 그녀는 “누구냐”고 묻듯이 다시 시선을 돌려 스크래치를 바라보았다. 고개가 움직이며 드러났던 장밋빛 뺨은 곧 뒤통수의 검은 머리칼에 다시 가리웠다.
아, 어쩌면…!
에자트가 입을 살짝 벌린 채 멍청히 그를 바라보는 동안 스크래치는 잠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다, 고개를 숙여 연인에게 무엇인가 다정히 속살거렸다. 그러더니 상인에게서 갓 구운 고기 꼬치를 받아 연인에게 건네주고는 무심하게 가판대에서 멀어졌다. 에자트 부부와는 반대 방향으로, 연인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점점이 사라졌다. 그것이 에자트가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아는 사람이야? 누군데?”
“음, 글쎄.”
아내의 물음에 에자트가 곰곰히 생각을 고르며 아내에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그가 운이 좋아 목격한, 시간의 흐름이 스쳐가지 않은 얼굴. 까마득한 세월 속 어느 날과 같이 웃고, 사랑하고, 살아 가는 영원의 한 장면을. 하루아침에 티플링이 된 자가 전설이 아닌 한 사람으로 남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쩌면… 그 전설 속 또 한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까지도.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티플링, 스크래치의 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