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모험가 크로스, 결국은, 한 끼의 식사가 인간에게 주는 행복에 대한 문제라는 걸세.
친애하는 나의 모험가 크로스, 결국은, 한 끼의 식사가 인간에게 주는 행복에 대한 문제라는 걸세.
뤼트롱스, 17.KHY.DR1689
타빈 크로스에게.
크로스, 가을을 맞이하는 폭우로 티스베 상류가 불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먹던 점심상도 물리고 급히 펜을 들었네.
자네는 지금쯤이면 옛 그림자 땅 어귀를 지나 이쪽 편으로 막 출발하자고 마음을 먹었을 텐데, 부디 두 해 전 여름에 식중독으로 작고하신 자네의 숙부께 물려받은 천성적인 게으름이란 유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네.
나더러 티스베 강을 두고서 ‘강’ 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습다고 했었지. 다섯 살 먹은 하플링 어린애 무릎이나 겨우 적실까 하는 개천이 무슨 강이냐고 말이야. 자네 말대로, 지도에도 그려져 있지 않은 얕은 개천임에는 맞아. 하지만 요 근방 촌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개천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네. ‘티스베’ 라는 말은 개천 하류를 낀 근처에서만 통하는 말인데, ‘성질이 변덕스럽고 사나운 암말’을 가리키는 말일세. 어째서 그런 뜻이 되었는지 이야기하려면 길어지니, 그건 자네가 이쪽에 도착한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네. 어쨌든 이 근방 고장은 가을이 다가오면 폭우가 잦아서, 제방도 저수지도 소용없이 물이 넘쳐 여간 곤혹스러운게 아니야. 굳이 ‘티스베’라는 이름을 붙여 부를 만큼, 가을철 이 개천은 매우 변덕스러워서 사정을 모르는 외지인이 몇 번이나 불어난 물살에 휩쓸려 명을 달리했다네.
자랑스러운 내 친구, 겁쟁이 취급하는 거냐며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지 말게. 새로운 것이 보고 싶어 맨손으로 이 작은 촌을 박차고 떠난 자네가 아닌가. 언제나 따듯하게 불을 피운 집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자네를 기다릴 뿐이었던 내가, 어찌 모험과 탐험을 두려워 않고 끝없이 넓은 세상을 유랑하는 자네더러 겁쟁이라고 할 수 있겠나. 겁쟁이라고 불려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일세. 그리고 나는 자네가 너무나 소중해서, 변덕스러운 티스베가 자네 목덜미를 물어 갈까봐 몹시 겁이 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나는 아마 티스베 물이 닿는 검의 해안 부두에서 하염없이 자네를 기다리며 울게 될 거야.
자네를 기다리며
켈두린
알라하임,22.KHY.DR1689
이스토뤼엔 뤼트롱스.
라빅 켈두린에게.
이 편지가 잘 도착할지 모르겠어.
나는 작고하신 숙부와 달리 근면하고 성실하지만, 아직 무사하니까 게으르다고 말하는 건 그만둬. 여긴 비소식이 전혀 없어. 네가 검의 해안 부둣가까지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일랑 접어두도록 해. 지난 번에 들렀을 적에 네 책상에서 슬쩍 가져온 타이모라의 동전이 행운을 부른 게 틀림없으니, 여신에게 기도라도 올려두면 좋겠지.
옛 그림자 땅을 가로지르는 동안 좋은 경험을 했어. 그 여행기인지 뭔지 하는 책, 아직도 쓰고 있는 중이지? 여전히 오래된 전쟁 기록의 실재를 확인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면, 내 이번 여행담은 무엇보다도 근사한 기념 선물이 될 거야.
몇 백년 전 그림자 전쟁으로 사라졌다고 전해졌던 촌락이 그 땅에 한 폭 그림처럼 남아 있더군. 도중에 강도를 당해 짐을 몽땅 빼앗겼는데, 짐마차를 우연히 만나 그 촌락에서 손님으로 머물 뜻밖의 기회를 얻었지. 때를 잘 맞춘 덕에 결혼식 손님으로 참석하는 영광을 누리고, 무일푼으로 황홀한 피로연을 즐기게 되다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아. 실컷 먹고 마시며 놀다보니 바람이 바뀌고 보리와 껍질콩을 걷는 일에 손을 보탤 수 있었어. 게다가 이 촌락에는 유독 티플링이 많아서, 일을 돕는 겸 오래 눌러 앉아 있다보니까 궁금했던 걸 이래저래 물어 볼 수 있었지.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건 그들과 함께한 식사야. 그들의 식사와 우리들의 식사를 비교하면 황금으로 지은 만신전에 대고 길바닥의 자갈돌을 비교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
너는 번잡한 걸 싫어하면서도 엘프답지 않게 맛난 걸 좋아하는 별스런 성격 때문에 제법 고생을 했더랬지. 네가 아직 발더스 게이트에 살 적에는, 신선한 고기와 생선, 향긋하고 달콤한 야채가 거리에 넘쳐나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면 그럴듯한 가게에 들어가거나 유복한 이웃에게 초대를 받으면 그만이었어. 훌륭한 요리 비법이 집집마다 가게마다 있고, 몇몇 궁전에서는 이름난 요리사를 고용해서 만찬회를 열기도 했지. 함께 만찬회에 초대 받았을 때 네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우리가 지금까지 저녁 식사에 대해 어떻게 떠들어 댔는지 생각해봐.
“저녁 식사는 역시 고기를 먹어야지. 하지만 훌륭한 저녁 식사가 되려면 어줍잖은 고기가 아니라 좋은 고기라야 해. 예컨데, 바닷바람이 부는 목초지에 풀어 키운 한살 반배기 숫소의 부드러운 안심이라면 저녁으로 먹을만 하지. 그리고 향초 태운 연기를 쐬어주며 화덕에 구워서, 달콤한 포도주와 피로 졸인 사과에 흑후추를 듬뿍 뿌려 곁들이는 게 제일이야. 하지만 그릇과 식기도 신경을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런 식탁에 올라갈 접시는 카라투어에서 만든 상아색 세공품이 알맞고, 코르미르 장인의 손이 닿은 은식기를 접시 모양에 맞추지 않으면 안돼.”
벽돌과 포장된 길, 부두에 둘러싸인 도시에 살면서 미식의 기쁨을 즐기지 못한다면 문명이라거나, 자유라거나 하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던 선생이 있었지, 아마. 하지만 그 선생보다 존경 받아야 마땅할 고대 드루이드가 온 페이룬 땅의 떠돌이 부랑아를 모아 만들었다던 낙원같은 공동체에서 그런 ‘휼륭한’ 저녁식사를 찾아보기 어려워. 그러나 이들, 특히 지옥으로 추락했던 엘투렐에서 옛 그림자 땅까지 찾아온 이들의 후예를 두고 설마하니 문명도 자유도 모르는 몸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할 지경이야.
그저 돌을 쌓아 올린 벽으로 사방을 가로막은 도시는 좋게 말해도 감옥이고, 나쁘게 말하면 관이나 마찬가지야, 켈두린. 높은 종탑과 편평한 길이 다 무어야, 아스카틀라 금에, 카라투어 비단이며 코자쿠라 명주 옷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야. 앉고픈 자리에 맘 편히 앉아서, 먹고 싶은 걸 즐겁게 먹을 수 없다면 인간이 이룬 그 모든 ‘훌륭하고 좋은 것’은 전부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것이지.
이런 이야기를 못난 글씨로 줄줄 늘어놓아도 재미가 없겠지. 그보다 겉봉에 뤼트롱스라고 적혀 있던데, 내가 아는 그 뤼트롱스가 맞다면 좋겠어.
사람보다 양이 많은 시골이지. 눈에 거슬리는 성벽도 없고, 기분 나쁘도록 다듬어진 포석도 없어. 들판을 따라 부는 바람에서 보리 풋내를 느끼고, 멀리서 풀을 뜯는 양 비린내까지 맡을 수 있잖아? 그런 곳에서 살면, 분명 네 다리도 나아지게 될거야.
알라하임은 바람이 거세니, 비구름이 아무리 두터워도 금방 날이 갤 거라고 생각해. 부디 내가 강을 건널 때까지 건강하길 바래. 적어도 내 환상적인 여행 이야기를 받아 쓸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바람 부는 알라하임에서.
너의 타빈.
뤼트롱스, 24.KHY.DR1689
알라하임 메존 드페레.
타빈 크로스에게.
가장 훌륭한 인간 탐험가 크로스, 검은 가면을 쓰고 내 소중한 동전을 가로채간 자네의 비정함에 더불어, 동포가 쌓아올린 문명을 향한 그 비관적인 시선을 오랜만에 접하니, 마치 오래도록 얼어붙은 동토가 때아닌 겨울비에 녹는 것만 같네. 그러한 진창에서도 자네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움트니 우정이란 참으로 신기한 씨앗이 아닌가.
보편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 활동의 한계 시간을 고려하면, 확실히 나는 발더스 게이트를 떠난지 오래일세. 자네가 잊혀진 토지를 찾아보겠다며 내게 기별도 없이 떠난지가 벌써 일곱 해 전이야. 자네 말마따나, 미식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내 별난 기질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시의 넘쳐나는 활기를 견디지 못한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슬프다네. 자네와 자네의 동포가 가진 삶을 구가하려는 활기가 나와 나의 동포에겐 없기 때문이야.
자네는 문명이 인간성을 파괴한다며 비난하곤 하는데, 두뇌 포식자가 남긴 폐허에서 다시 찬란한 도시 문화를 일궈낸 자네 동포의 열정과 집념은 존경 받을만한 것일세. 그러나 동포를 향한 그런 비난과 혐오가 젊음이 자네에게 주는 근사한 선물임을 알기에, 나는 자네가 추락한 고도의 후예를 찬양하는 그 마음이 몹시 기껍네. 보편 인간의 한정된 삶 속에서, 자네는 이제껏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테지. 그런 자네의 눈에 언젠가 허물어지고 말 문명 밖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네.
영원에 가까운 삶을 누리는 우리나 드워프와 달리, 시간에 예속된 단생종은 젊을수록 문명을 혐오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여기는 경향이 있네. 자연이 영원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 자연은 변화무쌍하며, 모든 변화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에 이루어지네. 오히려 돌과 진흙으로 쌓은 벽이 무자비한 시간으로부터 나약한 우리를 지키고 있는 셈일세.
자네가 옛 그림자 땅에서 들렀다던 < 라이스윈 >은 대략 이 백에서 삼 백여 년 전의 공동체인데, 아직도 대 드루이드 할신이 만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니,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네. 혹시 드루이드 할신은 아직 공동체에 머물러 있나? 그가 아반도르로 돌아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드루이드 할신은 특이하게도 공동체에 티플링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했다고 전해지지. 티플링이 여전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니, 실체 없는 낭설만이 페이룬에 떠돌고 있네. 티플링은 혈연이 아닌 혈통의 우연한 작용으로 발현되어 태어난다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혈족으로 사회를 이루는 페이룬 대부분의 인종과 달리, 그들은 혈족이 아니라 공통된 경험을 고리로 삼아 연결되어 사회를 만든다네. 배척되기 때문에 다소 폐쇄적인 부분도 있어. 옛 그림자 땅이 저주에서 벗어난 이후로, 발더스 게이트와 엘투렐 근방의 티플링은 대부분 공동체 < 라이스윈 >으로 이주했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네. 그러니 아직 젊은 자네가 < 라이스윈 >에서 티플링의 식문화를 처음 접하고 신선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하지만 크로스, 착각해서는 안돼. 성벽도 군대도 없는 엘프의 자연주의 공동체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한들, 그들이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자유를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네.
새벽닭이 우는군. 사람보다 양이 많은 뤼트롱스라는 평가는 옳은 평가야. 물론 뤼트롱스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나름 구색을 갖춘 여관도 있고, 오가는 행상을 위한 거래소에, 폭우나 눈에 갇힌 객손을 위한 겨울집도 번듯히 지어놨다네. 나도 객손 취급이라, 겨울집 윗층 방에 세를 얻어 지내는 형편이지. 식사는 하루에 한 번 관리인이 준비해줄 뿐이고, 나머지 끼니는 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해.
우리가 논해왔던 ‘훌륭한 식사’와 현재 나의 식사는 매우 다르다는 걸 미리 말해 두겠네. 하지만 많은 드루이드, 혹은 엘프가 추구하는 자연주의 공동체의 식사와 농촌의 식사는 크게 다르지 않아. 그러나 내가 장담하는데, 이 식사는 자네가 말하는 티플링의 식사와도 매우 다를 걸세.
그리움을 담아
켈두린
알라하임, 26KHY.DR1689
이스토뤼엔 뤼트롱스.
라빅 켈두린에게
발더스 게이트 검문소를 지나기 전에 널 한 번 보고 갈 걸 그랬지! 그러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리워지지도 않았을 거야. 그 분들을 떠올릴 때면 네가 먼저 떠올랐을 테니까.
일단 드루이드 할신에 대해서인데, 할신이라는 이름은 알지만 나는 그 고대 엘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아마 촌락에서 마주쳤어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초대된 결혼식 신랑이 마을 촌장이었고, 굉장히 존경을 받는 건 확실하지만 이름은 못 들었어.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그 때 물어도 괜찮겠지. 하지만 드루이드 할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으려면 나이가 몇일지 생각을 해보라고, 켈두린. 그만큼 나이깨나 먹은 엘프가 뭐가 좋아서 단생종 처녀애를 데려다가 신부로 삼겠느냔 말이야. 엘프는 보통 얼마나 살지? 난 그런 건 잘 몰라서 말이야. 너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으니 네게 물어도 소용 없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지 않겠어?
그리고 타이모라의 동전은 잘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뤼트롱스에 도착하면 돌려줄게.
지금 나는 알라하임에 있는데, 알라하임은 발더스 게이트 근처에 있는 산간 마을이야.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지도에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을 뒤로 조금만 올라가면, 리빙스톤을 가로질러 웜바위 요새로 쭉 이어진 하얀 포석 가도를 그대로 내려다 볼 수 있어. 매서운 산바람이 이 산등성이를 타고 도시가 있는 평지에서부터 올라오는데, 온갖 냄새를 싣고 오니까 마을 근처에는 짐승 그림자도 안 보이는 것이 재미있지.
덕분에 이 곳에서의 식사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훌륭한 식사’ 라고는 할 수 없어. 나는 문명에서 벗어난 이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야. 그들의 인생이 더욱 즐겁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알라하임에는 비탈에서 기른 야채나 바위에서 뜯은 버섯이 전부여서, 매일 빈곤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훌륭한 식사’를 논하기 위한 이런 저런 먹거리를 생각하면 너무나 괴로워.
그 촌락에서 살펴본 티플링의 식사법은 훌륭한 것이었어. 그들은 내키는 곳에서 내키는대로 식사를 하더군. 복잡한 식사 작법이니, 격식에 맞춘 그릇 같은 건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어. 식사를 하고, 식사에 초대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배고픈 위장 뿐이라고 하더라. 맛있는 요리의 중요한 비결 중 하나가 허기라고, 나를 초대한 사람이 말하더군. 불 앞에 서는 요리 담당조차 뱃속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요리사가 배를 곯으면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네 생각은 어때?
그들은 정말로 무엇이든 먹는 것 같아. 나는 저녁 식사에 초대된 자리에서, 가장 맛 좋은 요리라며 통채로 구운 돼지 머리가 나오는 걸 보고 처음엔 놀라서 도망을 칠 뻔했어. 하지만 맛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군.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어. 게다가 머리만이 아니었지. 속을 채워 부드럽게 삶은 창자, 크림처럼 입에서 녹아버리는 간, 씹는 맛이 좋은 혓바닥과 탄력있는 귀, 이빨에 달라붙어 찰지게 씹히는 껍질…. 잘 익혀 바삭해진 돼지코를 맛보지 않고 돼지 맛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놈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 놈의 코를 주저앉혀 버릴 테야.
대단한 기교를 부린 요리도 아니었어. 그들은 그저 살짝 소금을 뿌리거나, 후추를 더했을 뿐이야. 그런데도 그토록 근사한 맛이 나다니, 놀랍기 그지없지. 지금까지 온갖 양념과 향신료로 범벅한 살코기를 먹어온 내 인생이 한심해서 눈물이 나. 게다가 예의며 작법을 따지겠다고, 우아하게 턱을 들고 어깨에 힘을 잔뜩 넣어가며 식사를 하지 않았던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었어.
나는 그들과 함께 화덕에 둘러 앉아 식사했어. 식탁 없이 바닥에 앉아 식사 대접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고 너나 나나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은 그을음과 흙투성이 맨 손으로 고기와 빵을 나눠주고, 나무를 대강 깎아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지. 이런 식사의 어디가 ‘훌륭한 식사’라고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나는 식사하는 내내 정말로 즐거웠어.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미식을 경험했다고, 누가 묻더라도 자신있게 대답할 테야.
너와 달리 나는 정말로 길손이니까, 알라하임에서 헛간을 하나 빌려 묵고 있어. 두터운 비구름이 멀리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네가 말한 폭우가 걱정이 되었거든.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알라하임 사람들은 외지인에게도 친절하고 베풀어주려는 좋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 까만 감자와 말린 배추 뿐이고 살코기라곤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멀건 죽이라도, 내가 배를 곯으면 안 된다며 끓여 주었지. 하지만 그들은 옛 그림자 땅에서 날 대접했던 티플링들과는 달라. 여기 사람은 초라한 식사가 부끄럽다며, 나를 식탁에 초대하지 않아. 음식을 담아 손님 앞에 차릴 만한 그릇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아버지가 어린 자식의 작은 그릇을 빼앗는 걸 보았어.
내가 그 아이의 작은 그릇으로 멀건 죽을 마시는 동안, 그 아이는 닭 모이 그릇에 죽을 담아 먹더군. 마음이 아팠어.
모름지기 식사란, 단순히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잖아. 맛이나 모양새가 좀 모자라더라도, 배를 채워주고 즐거우면 돼. 식사는 진솔한 행위가 되어야만 하는데, 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이의 그릇을 빼앗을 정도로, 알라하임에선 식사가 부끄러워하며 체면을 차려야 할 일이 되어 있는 거야.
티플링들은 결코 그들의 식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누구도 먹지 않고 도축하며 버리는 부위를, 재와 흙투성이 손으로 나눠주면서도, 그들은 식사의 즐거움으로 기쁘게 웃고 있었어.
발더스 게이트 가도를 바라보며
너의 타빈.
뤼트롱스, 29.KHY.DR1689
알라하임 메존 드페레.
타빈 크로스에게.
‘자고로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면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
올바른 생활의 첫 수는 올바른 식사이다.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맛과 모양새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몸에서 필요로 하는 알맞은 영양소를 적당한 양으로 매끼니마다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이런 구절이었지? 자네가 인용한 구절 말일세.
나는 식사 때마다 저 구절을 떠올리고, 저 구절을 떠올릴 때면 항상 우리가 과연 무엇을 ‘올바른 식사’라고 부를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네.
올바른 식사에 대한 것은 동서고금 통틀어 말이 많은 문제이지. 건강한 신체에 바른 영혼이 깃든다는 옛 말을 차치하고서라도, 인생의 즐거움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흔히 사는 집과 입는 것, 그리고 먹는 것을 꼽지 않나. 그 중에서도 하루 세끼 식사는 인간 육체로 들어가 생명 활동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니만큼, 다른 것들보다 더 인경을 써야만 하네. 자연과 동식물을 연구하는 <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워터딥 식생활 개선회 > 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가 제대로 기능하는 데에 필요한 영양을 모두 채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두 끼의 식사가 필요하다고 하는군.
그렇다면 두 끼의 식사를 올바르고 훌륭한 식사가 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좋은 식료와 훌륭한 요리 기술만으로 식탁 위 한 접시의 옳고 그름을 정할 수는 없네. 그럼 값비싼 그릇, 잘 닦인 은식기, 좋은 교육을 받은 급사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아주 그릇된 사고방식의 신봉자란 말일까? 하지만 그렇지 않네. 올바른 식사는 다양한 문명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네.
< 라이스윈 >의 재생된 자연 속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산간 마을에, 가난한 사람의 이 빠진 그릇에, 은식기로 장식된 만찬 식탁, 합승 마차 안에서 엇갈려 놓인 무릎에, 혹은 앉은뱅이 엘프의 퀴퀴한 침대에도 ‘올바른 식사’가 있다네.
자네는 나와의 도시 생활로, 요리 기술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 애초에 요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자연을 어떻게든 취함으로써 하늘이 만든 것을 인간 세상에 활용할 뿐인 것이야. 좋은 것은 모두 자연에서 나온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지만, 절반은 틀렸다고도 할 수 있다네. 양념과 향신료, 요리사의 기교는 근본적으로 모두 자연에서 가져온 것을 더욱 좋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야. 사람은 근본적으로 좋은 맛을 내려고 예로부터 손이 닿는 한, 사정이 허락하는 한 맛있는 음식을 먹어왔네.
친애하는 나의 타빈, 결국은, 한 끼의 식사가 인간에게 주는 행복에 대한 문제라는 걸세.
문명의 안팎, 자연에서 멀고 가까운 것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네. 알라하임 사람을 < 라이스윈 >에 정착한 티플링의 후예와 나란히 세워두고, 어느 쪽이 더 올바르고 이상적이냐를 논해서는 안 되네. 흙투성이 손은 진솔하고, 빼앗은 아이의 그릇이나, 내가 자네를 위해 준비하는 은접시는 진솔하지 못하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자네를 대접하겠다는 마음만은 똑같이 진솔하다네.
마음을 담아
켈두린